
동궁과 월지는 물이 흐르는 인공연못 (674년 축조( 문무왕 14년)으로 만들어져 서쪽의 직선 건물과 동쪽의 12개의 봉우리처럼
굴곡진 연못가와 동서의 높이차를 두어 한눈에 볼순 없지만 역동적이며 넓게 보이는 설계
수온 , 수압을 조절하는 입수구 앞 섬, 물 흐름을 조절하는 입수구 이렇듯 과학적인 기술들이
결합되어 있는 예술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통일신라의 산물이다.건축물에서 월지(연못)을 바라볼때면 신라인들은 안압지(동궁과 월지의 옛 이름) 예 끝없는 바다를 옮겨놓은듯하다. 그래서
임해전지라고 불려 지기도했다.
또한 보는 곳마다 같을 수 없는 폐쇄와 개방의 역동감을 주어 흥미를 느끼게 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조경 원리는
통일신라의 기념으로 지어진 만큼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고구려의 축성 방식과 일본 아스카 지방 사이메이
천왕의 궁궐 안에 있는 주선석 유적의 2단 석조 입수구는 백제인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압지도 같은 형태이다. 그리하여 안압지는 우리 민족의 통일의 산물인 것이다


첫 번째 사진과 너무도 다른 모습의 안압지이다.
안압지란 이름은 조선시대로부터 불려졌다. 신라가 망하고 폐허가 되면서 연못에 흙이 쌓이고 관리가 안되어 기러기와 오리들만이 찾아오는 늪지대로 변하게 되어 문인들이 기러기 안雁 , 오리 압鴨, 연못지池라 안압지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개인적이지만 쓸쓸해 보이는 이름이다.



드디어 안압지는 1974년 준설공사를 시작하고 대량의 문화재들이 발굴되어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하여 빛나는 신라의 문화가 시작된다.
1980년까지 발굴을 하여 26개의 터가 있었으나 전각 3개를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곳은 세자가 기거를 하고 임해전이라는 곳에는 군신 간의 회의라든가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또한 외국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었다.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주령구 놀이나 월지에 나무배를 띄워 풍요를 즐기던 신라 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발굴로 인하여 이곳의 진정한 명칭을 찾아지게 된다.
신라 월성의 동쪽에 위치하고 임금이 될 태자가 살았던 동궁! 또한 1975년 발굴 과정에 토기 파편에
달월月 , 연못지池라는 명문이 나왔다.
월지는 신라시대 때 인공연못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2011년 7월부터 동궁과 월지로 이름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쓸쓸한 안압지는 더 이상 없는것이다.
현재는 세계적인 야경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으며 월지의 조경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롭게 태어난 동궁과월지는 또 다른 관찰을하게한다.
자연의 조경이 너무 아름다워 월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신라 천년의 찬란함을 감상할 수 있다.
깊은 역사에서 다시 태어난 동궁과 월지가 주는 감동과 메세지는 충분하다.



동궁과 월지의 재미난 건축물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할까 한다.
건축물 어디에서나 조망점이 황룡사지 9층 목탑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대는 높게 되어 있고 앞에 있는 섬이나 조산은 낮게 해 놓은 것이다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도록 설계한 기술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장인들이 만든 세계 최대의 걸작임은 분명하다.
동궁과 월지에서 나온 만 오천여 점의 유물들은 가까운 위치에 경주 국립박물관 동궁과 월지관이 따로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문화관광의 최고점을 찍을 것이다.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는 세계에서 빛나고 있다.
동궁과 월지 이름도 너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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