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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의 애달픈 설화이야기

경주여행

by 리쏭 2022. 2. 2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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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삼국이 통일되어 나라가 안정되고 모든 문화가 골고루 발달하던 시기에 불국사는 만들어졌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하여 김대성의 설화가 가장 유력하다.


신라시대 경덕왕 때 모량리에 경조라는 여인과 그의 아들이 살았는데 아들이 이마가 넓어서
대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서 하나를 베풀면 만 배의 복을 얻는다 하여
대성이는 어머니를 설득하고 하나 있던 밭을 흥륜사에 시주를 했다.
그러자 얼마 안돼 대성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경조의 꿈에
서라벌 제상 김문양 가문(현재의 국무총리와 같은 벼슬)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그 무렵 제상 김문양도 모량의 김대성이 아들로 태어나면 잘 길러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라는 예지몽을 꾸게 됩니다.
7개월 후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왼손은 꼭 쥐고 태어났고 왼손은 어머니 경조를 만난 후에 폈는데 손바닥에는 대성이라 쓰여있었다. 대성은 토함산에서 곰 한 마리를 잡았고 곰이 꿈에 나나타 잘못이 없는데 왜 나를 죽였느냐 하였고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대성은 곰에게 잘못을 빌고 그럼 나를 위해 절을 지어달라는 꿈을 꾸고 곰을 잡은 그 곳에

장수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사냥은 하지 않고 불교적인 마음이 더더 커졌다고 한다.


김대성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가증 큰 효도는 절을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부모님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 창건한 절이 지금의 불국사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세운 석불사가 지금의 석굴암이라고 한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대웅전, 극락전, 불국사를 생각하면 계단이 있는 자하문과 안양문, 범영루를 제외하고 남아있지 않았다. 현재의 모든 것은 1969년~71년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남아있던 400년의 건축과 터만 남아있던 곳에 복원하여 50년이 되었다.


처음 만나는 대웅전은 부처님을 말하는 곳이다. 왜 부처님을 대웅이라 하느냐?
백만의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자가 더 큰 영웅이다.

이러한데 우리가 자기 성질이 나운명, 욕망을 이기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부처님은 자기를 이긴 자,

자기의 운명, 욕망을 이긴 자다 하여 영웅 중에 영웅 대웅이라 한다. 지금의 절의 중심은 절이라는 말도 된다.

하지만 원래 절의 중심은 탑이라고 한다. 탑을 인도말로 스투파(탑)라 한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라 한다. 부처님의 유골을 사리라 하는데 사리가 워낙 귀하다 보니 후세에 내려오면서 보석과 연결되었지만 사리의 원말은 유골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유골을 모셨으니 부처 절님의 무덤과 같은 곳이 탑이다.

그러니 모든 절의 중심은 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가 조선시대 와서 탄압을 받으면서 점점 복을 비는 신앙이 되면서 참배를 하는 대웅전이 중심이 된 것이다.
대웅전 앞에는 두 탑이 있는데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그 유래를 보면 중국은 벽돌탑, 일본은 목탑이 주이지만 우리나라는 석탑, 돌탑이다. 물론 목탑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석탑이라고 한다. 그 석탑의 가장 기본 모델이 석가탑이다. 정형이라고 한다.. 다보탑같이 생긴 것은 다보탑 하나뿐이라고 하여 이형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탑을 하나만 짓었다고 한다. 황룡사를 보면 그러하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가운데를 비워두고 양쪽에 쌍탑을 지어 탑이 두 개인 쌍탑 가람의 형태로 바뀌었다.
석가탑의 설화로는 아사달과 아사녀가 있다.
통일신라가 되고 70~80년이 지난시 기였고 백제에는 고급스러운 건축물이나 탑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 아사달이라는 석공에게 석가탑을 짓도록 하게 하였고 그의 연인이라는 아사녀는 몇 해가 되어도 오지 않는 아사달을 보기 위해 불국사로 왔지만 석가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볼 수 없다며 석가탑이 지어지면 아래쪽 영지못에 탑이 비칠 것이라고 말해 준 것을 기억하며 영지못에서 기다렸고 탑이 완성된 날이 지났는데도 그림자가 비치지 않고 아사달이 오지를 않으니 아사녀는 그 슬픔에 영지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

후에 슬픈 아사녀의 소식에  그녀를 위해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불상의 얼굴을 조각할 때마다 아사녀의 얼굴이 떠올라 결국엔 얼굴 없는 불상이 완성되고 아사달도 영지못에 빠져 죽었다는 애달픈 이야기이다. 현재 영지못에는 그 불상이 있다고 한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 석가탑을 무영탑이라 하고 그림자가 비쳐 다보탑을 유형 탑이라고 하는 이유가 이 설화의 바탕이라고 한다.
석가탑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이며 탑을 둘러 팔방금강좌가 있다.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를 금강좌라 한다.
온세계 부처님이 앉아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 설법을 증명하기 위해 다보 부처님(다보여래)의 보배 탑이 솟았다는 설이 법화경에 쓰여있다고 한다.
그것을 상징하여 다보탑을 지었다고 한다. 두탑은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다.

 


석가탑의 사리를 도굴하려 했으나 실패를 하였고 그후 틀어진 탑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탑이 떨어져 깨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 현장을 목격한 신도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울었다고 한다.

문화재가 파손은 되었지만 깨지는 바람에 보물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리함 속에 목판 인쇄물이 들어있었다. 이것은 무구정광 대다라니(국보 제126호)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의 항의로 세계적으로 인정은 못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보탑은 전통 파괴의 층과 디자인으로 석가탑과 조화를 이뤄냈으며 단단한 화강암을 나무 조각처럼 섬세하게 만든

아주 대단한 기술의 탑이다. 다보탑에는 4마리의 사자상이 있는데 2마리는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고

한 마리는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현재는 얼굴이 상해있는 한 마리의 사자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국사는 두 탑만으로도 이야기가 많지만 불국사의 아름다운 풍경도 그야말로 일품이다.

우리나라의 절은 산중에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좋은 숨을 쉬고 힘들 때는 편안한 정서를 찾게 된다.

 

 

불국사는 예전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다 가보는 대표적인 절이듯 현재도 아름다운 풍경과 편안한 마음을

찾는  훌륭한 여행지로 손꼽힌다.  요즘은  불국사는 주차장 옆 겹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봄철이면 수많은 피크닉 장면들과 겹벚꽃과 함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곳곳에 볼 수 있다.


 

불국사의 애틋한 설화이야기로 해서  아름다운 겹벚꽃 공원의 불국사로 마무리할까 한다.

어릴때 수학여행으로 육안으로만 봤던 불국사의 이야기는 옛것이 있기에 현재 우리가 있음을 잘 말해주는것같다.  

짧은 이야기로 불국사를 다 설명할순 없지만 창건설이나 설화만으로도 이곳의 온기를 담고 이졍이 생겨버린듯하다.

색색이 변하는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인  불국사 !!

현재에도 후세에도  최고의  행복을 주는 정말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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